일기 같은 것/템플스테이 한 달 살기

[희방사 명상센터 템플스테이_Day8] 소백산 밑 안국사 방문, 스님과의 차담시간 중 깨달음

걷는 백지 2024. 1. 8.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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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예불 드리러 나왔는데
툇마루차담방에 불이 켜져있었다.
밤 내내 켜져있었던 듯 했다.
누가 볼라 언능 가서 껐다.
 

 
새벽에도 별이 끝내준다..
 

 
가지고 온 패딩을 세탁해서
옷을 세겹이나 단디 챙겨입었다.
 

아침예불과 태극권을 한 뒤 먹는 아침공양.
오늘 공양주보살님께서 쉬는 날이여서
팀장님께서 아침을 만들어주셨는데
채소가 많아서 너무 좋다.
 

 
아침 해에 산에 그림자가졌다.
나름 절경이라고 생각해 찍어봄ㅋㅋ
 

 
잠시 갖는 차담시간.
몸의 자세, 앉는 자세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
 

 
팀장님께 배우는 호텔식 수건 접기ㅋㅋ
여기 와서 '각', '정리정돈'에 대해서는 제대로 배우는 것 같다.
 

 

내일 들어올 참가자분들을 위해
방도 따뜻하게 뎁혀놓고
이불도 깨끗한걸로 세팅하고
더러운 곳은 없는 지 한 번 더 점검한다.
 

 
처음 왔을 때, 옷이며 이불이며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는데 열일하긴 했나부다.
텅텅 비었다.
 

 
어제 들어온 초등학생 친구에게
이 친구 생에 첫 군고구마를 구워주는 중..
나 왜 영광스럽니..?

 
초등학생 친구가 클래시오브클랜 게임 열심히 설명하는데
설명하는 손이 너무 귀여워서 
허락맡고 찍었다ㅋㅋㅋ
 

 
군고구마 까는 귀여운 손ㅋㅋ
군고구마 한입 먹어보더니
맛있다고 무아지경으로 먹는데
뿌듯했다.
 

 
오늘 점심은 고구마 사과 카레다.
요리를 할 줄 아는 자원봉사자언니가 해주는 카레.
나는 옆에서 거들었다.
요알못은 시키는 것만 딱딱 해야지.
 

점심공양준비를 얼추 마치고
옆에서 삼국지 읽고있던 초등학생 친구와
점심공양 전 잠시 나와서 산책을 했다.
조금 지루해하는 것 같기도 하고
맑은 공기 마시고 밥먹으면
더 꿀맛 같지 않을까 싶어서다.
 
내가 다리 모은 사진 같이 찍자고 하니까
이 친구가 다리 길게 나오게 사진 찍는 법 아냐면서
그 방법을 설명해줬다.
모르는게 없구나 너.
귀여워ㅋㅋㅋ
 
 

 
고구마사과카레와 비지찌개
카레가 너무 맛있어서 두번이나 먹었다.
그래서 그런가 밤 열시인 지금, 아직도 배가 더부룩하다.
 

 
점심먹고 소백산에 있는 절 안국사에 가는 길
스님들끼리 무언가 협의할 게 있다고 하신다.
우리는 그냥 안국사 구경 목적으로 올라탔다.
 
삼천원은 스님이 안국사 불전함에 넣으라고 주신 돈이다.
빳빳한 새돈을 오랜만에 만져봐서 그런지
장난감 돈 같다.
이질감이 느껴진다.
 

 

굽이굽이 산을 계속해서 올라갔다.
다행히 다 포장된 길이여서 승차감은 괜찮았지만,
경사가 가파른 곳이 많았다.
차로 산 하나는 넘었다.
 

 
가면서 길가에 나온 고라니도 봤는데
우리 차 소리에 언능 산속으로 몸을 숨겼다.
스님이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으시는데
나도 따라 사진을 찍음.
 
스님이 고라니한테 잘 살으라고 그냥 혼잣말 비슷하게 던지셨는데
괜히 내가 뭉근한 행복함을 느꼈다.
 

 
드디어 안국사에 도착.
절이 크진 않았고,
건물, 주변 잔디, 나무 등등 다 깨끗하게 관리되어있었다.
'정갈' 그 자체.
 

 
소백산 안국사에 있는 부처님.
아까 스님이 주신 천원을 불전함에 넣고
삼배를 했다.
여기 와서 예불, 삼배할 때의 내 바램은 딱 하나다.
'어떤 일이 일어나도 헤쳐나갈 지혜를 주세요.'
돈도 좋고 맛있는 거, 등따수운거, 사람들의 인정 다 원한다.
그 중에서도 딱 하나만 바라라고 한다면
난 '지혜'이다.
 

 
안국사 앞에 있는 산이 그야말로 장관이다.
거대한 산이 너무 바로 내 눈앞에 가까이에 있어서
살짝 어지럽기도 하고,
방대한 그림이라서 진짜 산으로 느껴지지 않는..
그러한 느낌도 든다.
 

 
키햐...
뭐 말이 안나오는 풍경
자연 앞에서는 항상 카메라가 기가 죽는지 
다 담지 못한다.
 

 
처마랑 새파란 하늘의 조합.
어쩜 하늘이 이렇게 쌔파랄수 있지?
 

 
안국사를 실컷 구경하고
스님들이 대화 나누시는 곳으로 들어왔다.
안국사 스님께서 귤과 우유를 주셨다.
 
초등학생 친구와 쉴새 없는
밸런스게임
과자 넣은 라면 vs 젤리 넣은 라면
계란 넣은 라면 vs 치즈 넣은 라면
호떡 vs 붕어빵
.
.
.
ㅋㅋㅋㅋㅋ
힘들다, 친구야.
 

 
안국사 떠나기 전 마지막 한 컷.
소나무와 기와 새파란 하늘.
너무 예쁘다.
 

 
다시 희방사 명상센터로 돌아왔다.
돌아오자마자 30분 실컷 방에서 자고
이번에는 툇마루 차담방에 있는
방석커버를 세탁하기 위해 벗기는 작업을 했다.
 

오늘 저녁공양은
점심에 먹은 카레
어제 먹은 잡채
그동안 먹었던 반찬들로 차려졌다.
 

 
나름 저녁은 조금먹겠다고 해놓고
또 많이 펐다.
장이 편안해야 머리도 맑아지는데
일 한다는 명목으로 주구장창 간식도 그렇고
다 먹고 있다.
 
다이어트는 아니더라도
속 편함을 위해 내일은 조금 덜 먹어봐야겠다.
 

 
저녁먹고 나오니 핑크구름하늘이 떠있었다.
누가 솜사탕을 하늘에 떼어다 놓은 것 같다.
 

 
저녁예불 전, 스님께 배우는
난로에 불피우는 방법.
몇 번 해보기도 헀고,
거듭 알려주셔서 이제는 확실히 알았다.
 

 
저녁예불 후, 스님께 요청드려
두번째 차담시간을 가졌다.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에 나오는 '오온이 공하다'는 
그 말 뜻을 어렴풋이 알것 같다.
내용이 장황해서 다 기록할 수는 없지만,,
기억에 남는 건.
 
부처의 가르침에 따른 ‘삶’은
100을 가져도 오케이
40을 가져도 오케이
0을 가져도 오케이인 삶.
그래도 괜찮은 삶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것은 '반응'에서 온다는 것이다.
내가 어떻게 해석하고 바라보는지(프레임의 법칙)에
따라 완전히 달라진다고 한다.
 
생각해보니 그랬다.
나는 지금 임금체불도 겪고 있고
수중에 쓸 수 있는 돈이 10만원도 없는 상황이지만
 
매일 맛있는 밥을 삼시세끼나 먹으며
좋은 사람들과 대화 나누고,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있으며,
쉴 수 있는 따뜻한 방이 있고,
군고구마도 구워먹을 수 있고,
쨍하게 신선한 공기도 마실 수 있고,
시간마다 변하는 하늘과 산도 볼 수 있다.
 
나는 상반되는 두 가지의 상황을 모두 갖고 있다.
 
여기 오기 전의 나는
임금체불 피해자, 돈 없는 사람,
'결핍'이라는 것에 집중하고 있었고,
그걸 없애고자 무수한 것들을 하며 순간순간을 보냈다.
 
하지만 여기 오고 난 후의 나는
'피해자, 돈 없는 나'를 회피했던, 외면했던 간에
그건 저 한구석 어딘가에 치워놓고
산, 별, 군고구마, 사람들, 따뜻한 방 등등과 함께
순간순간을 채우고 있다.
 
그러니 인생은 해석에 따라 달라진다고
당장 이렇게 결론 지으면 문맥에 알맞고 깔끔하겠지만,
그냥 비워두고 싶다.
 
 
앞으로 나는 또 어떤 상황에 따라 어떻게 흘러갈지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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